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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8 백일몽, 기묘한 이야기 (1)

그러니까 약 3주 전의 일이다.
비가 내린 다음 날 특유의 무덥고 무거운 날씨였다.
아침부터 업무 관계 일로 골머리를 앓던 나는
진전 없는 상황에 질려 잠깐의 피신을 결심했다.

적당한 핑계를 대고 회사를 나와 편의점에서 물 한병을 샀다.
그 물을 다 마실 때까지 회사에 들어가지 않을 셈이었다.
일반주택을 개조한 회사가 많은 이 동네는
사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기도 한데(출근소요시간 약 7분;;),
단층건물이 많고 골목마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여기저기로 이어져있다.

이 동네로 이사온지 몇달 지났지만 사실 모르는 곳도 많다.
아는 길을 따라 빙글빙글 돌던 나는 어찌어찌하여 평소에 한번도 지나지 않던
골목으로 발길을 옮기게 됐다.
별 특징없는 길을 따라 호젓한 주택가가 이어졌다.
재미없는 동네라고 생각하며 '슬슬 회사로 들어가볼까'하고 시계를 보다가
문득 어느 가게 앞에 발길이 멈췄다.

어딘가 재밌어 보이는 가게였다. 아니, 들어가고 싶은 가게라고 할까.
2평도 제대로 안될 것 같은 좁은 공간에 헌 장난감, 헌 책, 헌 옷 같은
헌 물건이 옹기종기 진열되어 있었다.
그 고요한 소박함에 끌려 안으로 들어갔다.

40대 중반 정도의 인상좋은 아주머니가 혼자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진열되어 있는 헌 옷들이 의외로 상태가 괜찮아서
한참을 이것저것 골라보는데,
아주머니는 그동안 얼굴 한번 안 찌푸리고 내내 상냥했다.

"여기는 웬만해선 아무도 안 지나가니까 그냥 입어 보세요."

아주머니의 말에 용기백배하여 의자 뒤에 슥 숨어서
몇벌을 입어보기도 하고 (결국 티셔츠 하나, 원피스 하나를 샀다!)
이런저런 담소도 나누기도 하다가
어찌어찌 30분 정도의 시간이 흘러갔다.

지금 땡땡이치고 있는 중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부랴부랴 가게를 나오는 내 뒤꼭지에 대고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말씀하셨다.

"다음에 또 오세요."

그 뒤에 이어진 말.

"근데 다음에 오실 땐 제가 없을지도 몰라요."

어쨌거나 꽤 기분 좋은 가게였다.


시간은 흘러흘러 이번 주 월요일 밤.
강아지 산책을 시키러 밖으로 나왔다.
골목골목 돌아다니다 문득 그 가게가 생각이 났다.
'한번 가볼까, 문은 닫았겠지만.'
생각하며 호젓한 길을 강아지와 함께 뚜벅뚜벅 걸었다.

얼마 안 가 낯익은 그 거리가 나타났다.
딴 생각을 하면서 걷느라 이변을 눈치챈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없었다, 그 가게가. 아무리 찾아도.
게다가 당황스럽게도 그땐 발견하지 못했던 건물이
길 중간중간에 불쑥불쑥 나타난다.

"이런 데 경찰서가 있었나?"

"저번에 교회가 있었던가?"

가다보면 나오려니 생각하며 걷기를 한참.
결국 길이 끝나고 찻길이 나왔다.

.....겨우 몇주 지났다고 가게 하나가 흔적없이 사라지나?

그럴 리가 없다. 는 결론을 내리고 다시 되돌아갔다.
역시나 없다. 또 길끝이다.
귀신에 홀린듯한 기분이었다.
근데 밤도 아니고 대낮에 귀신에 홀리거나 할까?

서랍 속의 그때 산 옷들을 보면 기분이 이상해진다.
나중에 대낮에 다시 그 거리에 간다면 그 가게를 발견할 수 있을까.
그랬으면 싶기도 하고 아니었으면 싶기도 하다.
아마도 괴담과 불가사의를 좋아하는 습성 때문이겠지.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강경옥님의 초기 작품집,
<이미지 퍼즐>에 '달의 찻집'이라는 단편이 있다.

한밤중에 독서실에서 나온 어떤 여학생이 아무도 없는 밤거리를 지나가다
불이 켜진 찻집에 우연히 들어간다.
작은 찻집엔 손님이라곤 혼자 밖에 없고 여학생은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친절한 여주인과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의 대화는 즐거웠지만
어쩐지 여학생은 내내 어떤 위화감을 느낀다.
다음 날, 지난밤 지갑을 두고나와 미처 치르지 못한 커피값을 내기 위해
다시 그곳으로 간 여학생은 대낮의 거리를 오랫동안 헤매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찻집을 찾지 못한다.

문득 그녀는 깨닫게 된다.
지난 밤 내내 느꼈던 위화감의 정체를.
그날, 밤하늘엔 '달'이 없었다.


2008/08/08 01:18 2008/08/08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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