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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0/02 [영화] 미인도 - 파탄의 길을 걷다 (1)

이것, 참. 블로그에 영화 리뷰 쓰는 게 도대체 몇년 만이냐.
누가 보면 어디 영화관도 없는 오지에 몇년 살다온 줄 알겠네.
이래놓고 한참 지난 영화를 끌고 리뷰랍시고 몇년 만에 끄적이는구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알다시피 작년 겨울 영화다.
요즘엔 케이블에서도 하더라. 속된 말로 쉴만큼 쉰 떡밥이란 얘기.
솔직히 이렇게 지난 영화를, 평도 한참 안좋은 이 영화를 내가 왜 봤겠냐.
당연히 요즘 뜨고 있는 '그 분' 때문이다. (내가 써놓고도 좀 부끄럽구만)
이러다가 '모던보이'도 볼 기세다. 이건 박해일팬인 내 친구도 재미없다고 했는데.


이 영화 한참 상영할 때 신촌에 포스터가 꽤 많이 붙었었다.
특히 버스정류장에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학원 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싫어도 몇번이나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이.....'장르가 에로였나?'였다.
정식 포스터는 아니고 한창 흥행중에 제작한 포스터였는데, 지금 대충 기억나는 문구는 '충격의 7분 파격 정사씬'인가?
그 문구를 물끄러미 보고 있으려니 시대물의 탈을 쓴 에로냐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포스터만 보고 있으면 한때 왕성하다가 어느 틈엔가 맥이 끊긴 변강쇠나 뽕 시리즈 같은 뭐 그쪽인가 싶기도. 허나 탑급은 아니라도 주류 배우에 속하는 김민선이 나오는데 설마...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도 본 사람들의 감상은 대부분 '야해' 이 말 밖에 없어서 참 기이하게 느껴졌다. (지금은 이해한다. 지금 누가 나에게 감상을 물어본다면 똑같이 '야해' 한 마디 하고 그외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하리라) 뭐....결론만 얘기하면 이 영화는 나에게 그 기이함을 실감하게 해준 110분이었다.


리얼리티에 무임승차하다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말이 있었다.
광고에서 하도 주입식으로 읊어댄 덕에 실제로 침대가 가구가 아니라고 믿는 어린 것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다행히 어디까지나 20세기의 일이다.
허나 만약 21세기 버전이 있다면, 신윤복은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소설이며 드라마며 영화며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해준 덕에 이젠 누가 신윤복이 남자라고 하면 증거를 대 보라고 할 판이다. 지극히 정석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발끈하며 신윤복이 왜 여자냐고 따지면, 헐리웃 유명 배우가 우리 제품을 안 쓴다는 증거는 없지 않냐 항변하던 모 화장품 간부처럼 반박해 오지 않을까.
어찌 역사를 끌어다 제맘대로 갖다붙이는데는 그렇게 주저가 없는지. 그나마 자손이라도 든든하게 남아있는 위인들은 차라리 낫다. 항변해줄 자손도 없는 위인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여기 신윤복 선생님께서는 후자에 속한다. 이 비극이라니.
아니,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다. 그 분의 일생에 상상의 여지를 끼워 넣을만한 요소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생몰연대도 불분명, 처자식에 대한 기록도 없다. 미스테리한 인생 그 자체. 암만 팩션이라도 성별까지 바꾼 건 너무 하지 않느냐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란 작품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종족들이다. 처자식에 대한 호적 기록이라도 확실히 남아 있었다면 감히 이런 수모를 안길 엄두는 못 냈겠지만. 아무리 뻔뻔해도 김유신 장군이나 신사임당의 성별을 바꾸려는 미친 짓을 할 인간이 없는 것처럼.
그래, 이해하고 넘어간다 이거다.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못봐줄 것은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은 픽션입니다'라던가, 백보양보해서 '이 작품은 실제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자막 하나 넣는 게 그렇게 힘드냐. 실존했던 인물을 다큐로 다루는 것과 상상력을 발휘하여 없던 사실까지 지어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물론 역사적 해석의 관점은 논외다) 전화 걸어 항의도 못하고 소송도 못 거니까 죽은 사람이 만만하냐!
수용자 측에서 가감없이 믿어버릴 수 있다는 게 더 문제다. 대중문화는 빌어먹게도 영향력이 너무 크단 말이다. 어린 것들은, 아니 일부 큰 것들도 너무나 의심없이 믿어버린단 말이다. 바로 실존 인물을 다뤘다는 데서 부여되는 '리얼리티' 때문에. 이 '리얼리티'를 무임승차로 업어가면서, 지나친 상상력을 지적하면 창작물로서의 자유를 존중해 달란다. 에라이, 이런 비겁한 것들이 있나! 
창작자들은 대중문화의 창조자로서 책임감 좀 가지고, 역사학회 어르신들은 체면 깎인다고 마뜩찮아 하지말고 안내문 삽입 의무화 좀 나서 주시라. 몇년 전부터 유행하는 고대사 드라마 보고 있으면 심란하기 그지없다. (이러다간 드라마 환단고기가 나오는 사태가 날지도 모른다)


사랑이냐 에로냐
초반부는 나쁘지 않았다. 말 많았던 기녀 체위씬도 '풍속화에 파고드는 윤복'이란 관점에서 그럭저럭 납득할 수 있었다. 신윤복의 풍속화를 실사로 구현하여 그림과 겹쳐지듯 편집한 씬은 좋았다. -성별논란은 일단 접어두고- 젊은 거울장인 강무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도 나쁘지 않았다. 치장이 다소 많이 들어갔지만 첫 정사씬도 수긍할 만 했다. 적어도 쓸데없이 끼워넣었다는 느낌은 주지 않았다. 오히려 공을 꽤 많이 들였구나 싶었다. 사전에 읽었던 악평 일색의 리뷰들이 무색할만큼 '뭐 이 정도면 괜찮네' 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중반부에 들어가면서 이 영화는 파탄의 길을 걷는다.(물론 줄거리 상의 파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건을 위해 무리한 전개를 끼워넣는 방법을 통해서이다. 윤복이 스승 김홍도에게 연인의 목숨을 구걸하게 하기 위해, 김홍도가 시커먼 애증과 욕망을 윤복에게 표출하게 하기 위해, 강무는 절에 놀러갔다 재수없게 풍기문란으로 걸려 능지처참'씩이나' 당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구!
이 과정에서 나오는 스승의 제자를 향한 성희롱(아니라곤 말 못할거야)은 참 기분 엿같게 만든다. 이걸 애증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려니 참 가책이 느껴진다. 불필요한 노출, 무리한 정사씬. 이걸 에로가 아니면 뭐라고 얘기하나.
이 정도 되면 속화에 빠져든 윤복의 내면적 갈등이나, 자유로운 화풍으로 인해 스승과 도화서에까지 퍼져가는 파문, 천재적인 제자를 향한 스승의 질투와 감탄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 같은 게 깊이있게 그려질 거란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다.    


좋은 연기 나쁜 연기
좋은 영화에 나쁜 연기는 드물지만, 나쁜 영화에 좋은 연기가 꼭 드물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미인도는 어느 쪽인지 참 모호하다.
악평 중에서는 배우 연기도 만만찮게 까이고 있었지만, 최소한 영화'보다는' 나았다고 생각한다. (김홍도 역을 맡은 김영호 씨 빼고. 김영호 씨는 생방촬영에 시달리는 드라마 같은 연기를 보여줬다. 후반부 말을 탄 채 강무에게 긴 대사를 치는 씬은 감독이 OK한 게 신기하다)
김민선 씨는 참 열심히 했다는 게 전해졌다. 적어도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다 한것 같다. 그런데도 좋은 연기였다고 말하기는 주저하게 된다. 그게 지나치게 서구적인 외모에서 오는 괴리감 때문이었는지, 단순히 영화가 영 별로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노력으로 봐주고 이런 거 없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왠지 이 영화에서 김민선 씨를 까면 양심의 가책을 느낄 거 같은 압박감 비슷한 걸 느낀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게 한 김비담, 김남길 씨. 이 영화로 '선덕여왕'에 캐스팅됐다고 하는 얘기가 있는데, 그렇구나 싶을만큼 언뜻언뜻 보이는 이미지가 있다. 이상한 표현이지만 '첫사랑스러운' 미완성의, 소년 같은 매력, 찰나의 반짝임을 느낄 수 있었다. '젤루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같은 현대어삘 충만한 대사에는 움찔했지만 대체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좋은 연기였다고 말하기는 주저하게 된다. 영화 자체의 한계 때문일까. 하지만 역시 배우로서는 할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추자현 씨만큼은 확실히 잘 했다고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마지막 가마씬에서의 연기는 흠을 잡을래야 잡을 수가 없고, 이 영화에서 드물게 빛나는 순간이다. 바꿔 말해 이 영화에 들어가 있기에는 아까운 장면이다.


결론
삼류라고 하기는 그렇고 2.5류 정도 되는 영화.
김비담 씨를 보고 싶다면 볼만은 한 영화.
추자현 씨는 자부심을 느껴도 될 영화.
김영호 씨 팬은 없는 걸로 치는 게 나은 영화.
김민선 씨의 연기 인생에 도움이 될지 안될지 모르는 영화.
영화 수익은 신윤복 선생님께 위자료로 다 드려도 모자라는 영화.

  

2009/10/02 02:14 2009/10/02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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